법원이 손해사정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 화재 재고자산 평가(2010다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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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전에 당사자가 따로 의뢰해 만든 손해사정서도 법원이 증거로 쓸 수는 있다. 그러나 합리적 근거가 없거나 경험칙에 맞지 않으면 채택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불에 타 없어진 재고자산(액세서리)을 최초 제조원가에 물가지수를 곱해 평가한 손해사정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원심을 깼다(2010다6222, 2010.5.13. 선고). 손해액 평가에서 법원이 보는 것은 근거서류, 평가방법의 일관성, 경험칙과의 부합이다.
핵심만 먼저
- 소송 밖에서 만든 감정의견서도 서증으로 낼 수 있지만, 법원 감정만큼 믿을 만해야 채택된다.
- 이 사건 손해사정서는 기초 서류가 빠져 있고, 확인서는 사고 뒤에 받은 것이었다.
- 같은 사고의 물건인데 품목마다 다른 평가방법을 써서 금액이 부풀었다.
- 손해사정서는 의견을 적은 보고문서에 가까워 작성됐다는 것만으로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는다.
법원이 정한 채택 기준
전문가가 쓴 서류인데 왜 안 받아주느냐는 불만을 실무에서 자주 듣는다. 법원은 서류의 이름보다 그 안의 근거와 논리를 본다.
소송 밖에서 전문가가 작성한 감정의견서는 손해사정서를 포함해 서증으로 낼 수 있고, 법원이 합리적이고 믿을 만하다고 보면 사실을 인정하는 자료가 된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대법원은 그 의견이 법원의 감정이나 감정촉탁만큼 공정하고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서 나온 것인지 의심할 사정이 있거나, 법원의 합리적 의심을 걷어낼 정도가 아니면 쉽게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소송 중이라 법원에 감정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도 한쪽이 혼자 의뢰해 만든 경우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민사소송법 제334조 · 제341조 취지).
이 사건에서 걸린 세 가지
사건은 이삿짐을 운송 · 보관하던 중 불이 나 물건이 사라진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원고의 손해사정서는 잃어버린 물건 값을 약 2억 8,837만 원으로 계산했다. 대법원은 세 가지를 문제 삼았다.
- 금액 산정의 기초라던 최초 제작 당시 제조원가 산정서가 붙어 있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근거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제조원가가 적정하다는 근거로 낸 매입 · 매출확인서는 거래할 때의 세금계산서가 아니라 손해사정을 앞두고 받은 것이었다. 믿기 어렵고, 거래 시기와 단가도 분명하지 않았다.
- 원고는 2003년 이후 부가가치세를 낸 실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물건은 화재일을 기준으로 3~4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가방법은 일관돼야 한다
이 손해사정서는 집기비품과 가재도구는 재조달원가에서 쓴 기간만큼 감가수정하는 방법, 곧 복성식 평가법(원가법)으로 계산했다. 그런데 재고자산인 모조장신품만은 최초 제조원가에 물가지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따로 계산했다.
대법원은 이 부분을 짚었다. 유행을 타는 모조장신품이 3~4년이 지나도 물가가 오른 만큼 값이 오른다는 전제는 경험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없어진 물건의 손해액은 원칙적으로 사고 당시의 교환가치, 곧 시가가 기준이고, 시가를 알기 어려우면 재조달원가에서 감가상각을 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항목마다 다른 잣대를 써서 결과가 커졌다면 그 손해사정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처분문서와 보고문서
증명력을 이해하려면 두 문서를 구별해야 한다. 처분문서는 계약서처럼 문서 자체로 법률행위가 이뤄진 것이다. 보고문서는 사실이나 의견, 감상을 기록한 것이다.
대법원은 작성자 자신의 법률행위에 관한 문서라도, 그 행위를 바깥의 사실로 보고 · 서술하거나 의견과 감상을 적은 것이면 보고문서라고 본다. 손해사정서는 손해액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담고 있어 보고문서에 가깝다. 처분문서처럼 강한 증명력이 당연히 따라오지 않고, 내용이 합리적인지와 근거가 있는지로 신뢰를 따로 얻어야 한다. 손해사정서가 작성됐다는 사실만으로 손해액이 정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주 헷갈리는 점
손해사정서를 내면 그 금액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근거서류와 평가방법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돼야 채택되고, 근거가 부실하면 배척될 수 있다.
소송 중이라면 법원 감정이나 감정촉탁이 원칙이다. 감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도 따로 의뢰한 손해사정서만 냈다면 법원은 더 신중하게 본다.
믿을 만한 손해사정서를 쓰려면 거래 당시의 증빙을 갖추고, 항목마다 같은 원리의 평가방법을 쓰고, 경험칙에 맞는 전제를 세워야 한다. 시가, 재조달원가, 감가상각 기준을 어떻게 잡았는지도 분명히 밝히는 편이 좋다.
정리하면
당사자가 의뢰한 손해사정서도 증거가 될 수 있지만, 합리적 근거와 신뢰성을 갖춰야 채택된다. 손해액 평가는 근거서류, 일관된 평가방법, 경험칙이 관건이고 재고자산은 시가나 재조달원가에서 감가상각을 뺀 금액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해사정서는 보고문서에 가까워서, 결국 그 안의 근거와 논리가 설득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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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실무 견해는 작성자 개인의 의견이며 법률·손해사정 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은 약관과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